동이족의 역사를 바로세우자
계백장군
0 6,807 14-05-12 22:31
0 6,807 14-05-12 22:31
본문
한민족의 터전은 중국대륙과 한반도의 전체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동이족(한민족)을 밝히고 있는것이다
▲ 한민족(동이족)의 땅임, 단군조선의 삼환관경임, 단군조선 전의 역사부터 알아야 한다.
중국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은 약100년 전부터 사용한 것이다.
중국의 부여는 백제의 부여
중국의 경주는 신라의 경주
중국의 가야는 김해의 가야
중국대륙은 한민족(동이족)의 땅이라는 역사사실을 중국스스로 밝혀주고 있는 것이며, 중국의 동북공정정책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는 한반도 전체를 포합된 것이여야 맞는 것이다.
중국의 탁록 삼조당에 있는 삼황제 동상(왼쪽부터 치우, 황제, 염제). 중국은 역사를 끌어올리면서 동이족의 치우는 제외하고 황제와 염제에 대한 부분만 사실화 시킨것이다. (사진 권태균)
중국의 삼황제 동상 중 치우는 동이족(한민족)우리의 조상이 확실하며, 황제라는 이름도 동이족의 헌원황제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여지며, 단군조선 전기의 한민족(동이족)의 역사를 중국역사에 표기하고 있으므로 상고시대의 한족과 동이족(한민족)의 역사에 대하여 세계 다른 나라의 문헌과 사학재단에 대하여 모두 조사를 해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민족(동이족)의 혈통과 최초의 국가
먼저 한민족(동이족)의 조상이 누구인지부터 알아야한다.
우리의 조상이 누구냐고 물으면 단군의 자손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조상은 (반고,환인 천황이다)천제원국의 나라이다.
한민족의 최초의 국가는 천제원국(반고, 환인 천황이라고 불렀던 발음)
1) 한민족(동이족)의 발음으로는 천제원국 또는 우전국, 이진국이라고 불렀다.
2) 중국(한족)의 발음으로는 천제국을 이딘국이라고 불렀다.
3) 유럽(이스라엘)의 발음으로는 천제국을 에덴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기록에 의한 인류의 최초의 조상은
1) 아반과 나반이다.
동이족, 묘족, 장족은 모계사회 (어머니)이로부터 시작되는 사회였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한민족의 역사기록은 단군신화 이전의 역사를 단절시킨 것은 한민족의 혼맥을 끊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내용에는 우리의 조상이 반고, 황인 천황이라는 기록을 빠트린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한민족(동이족)의 국가 천제원국은 5환국이였으나 점차 세력이 확장하여 12연방체로 발전하였다.
천제인의 12연방체
1) 반고환인=7대 3-5000년
2) 환을천황 19대까지=거불단 환궁
3) 단군~47대까지 우단국
4) 담군 색부루
진나라가 한족을 천하통일한 진씨 황제는 우리의 한민족(동이족)이다.
MBC 문화방송국에서 방영하고 있는 고주몽과 부여, 한나라의 군황 우방이도 한민족(동이족)이다. 진씨 황제의 천하통일과 진나라의 멸망 과정에서 국가의 혼란이 극에 달하였으며, 한민족(집권세력)의 일부가 중국의 절강성, 운남성, 가야, 부여지방에 거주하던 동이족이 한반도로 이주해오면서 조상, 묘, 지명을 함게 통일신라시대까지 가지고 왔기 때문에 한반도의 지명과 중국의 지명이 중복되는 이름이 많다는 것을 알수 있다.
현재 중국지명에는 가야, 경주, 부여 등의 이름이 있듯이 한반도에도 김해의 가야, 백제의 부여지명의 나라가 과거와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는 신라의 경주라는 이름도 중국에 있는 지명이다.
세계유일의 한민족(동이족)만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간난아이의 엉덩이에 푸른 반점이 있다.
동이족의 혈통확인은 반점에서 확인이 되며, 염색체가 거의 같다는 것이 확인된다.
그러나 한족인 중국은 푸른반점이 없기 때문에 한족과 동이족의 혈통을 쉽게 가려 낼 수 있다.
상고시대에는 자신의 성씨가 죽을 때 까지 없었으며 (약 6.000~1만년) 도통한 사람에게만 선도에서 (봉선방)씨자를 붙여주었다.
동이족(한민족)의 중심지는 천산산맥 (삼위태백산)과 (한반도의 태백산)의 지명이 비슷하다.
이시대가 지금으로부터 약1만년전 전으로보고있다. 한반도의 태백산맥의 산 이름과 동일하는 것은 중국에서 살던 동이족이 한반도로 이주해 왔다는 것이 입증되는 대목이다.
(삼국유사의 새로운 고찰)
단군신화는 사실기록에 의해서 발취해야한다.
응녀, 호랑이, 쑥에 대한 해석
응녀는 응씨이고 호랑이는 호씨 성의 이름으로 해석을 해야한다.
그 이유로서 그 때 당시에는 짐승의 동물 형상을 빌려 이름과 나라 ,부락, 지명의 이름을 지었다.
관직의 이름을 산 이름을 붙여 사용했으며, 관직명으로 삼았다.
즉 동학, 서학, 남학, 북학, 중학 등의 이름이 서전에서 표현되었다.
한족의 한나라의 군황은 유방인데 유방의 시조는 동이족의 단군신화의 헌원황제이다.
한나라, 부여, 고주몽의 고구려 때의 한나라를 일컨는 말이다.
헌원황제의 자녀는 25명중 14명이 신적으로 도통하여 성씨를 하사 받았다. 한다.
제곡 고신씨의 계열 해모스, 고주몽, 유리왕의 고구려건국으로 이어진것이다.
(황단고가책, 규원사화에서 발췌)
한문을 만든사람이 (동이족)의 신지라는 한민족계의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는 중국글로 잘 못알고 있다. 문자를보면= 갑골문자(거북등) 결승문자(쌈줄) 녹조문자, 신지문자가 지금의 한문이다.
신지선생은 음과 뜻의 표기를 우리가 사용하는 음과 뜻이 같게 발음하는 한문 글이다.
즉 우리말의 뜻과 발음으로 북경하면된다 신지선생이 한문을 만들 때의 음과 뜻글자이다.
신지선생이 만든 신지문자의 한문의 음과 뜻글의 발음을 우리식으로 2004년까지 사용한것을 북경을 베이징으로 중국식발음으로 표현하는 것은 큰 잘 못이며, 우리문화주권을 포기한 것이다.
일본, 중국, 미국등의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문화주권을 지키는 것도 역사를 지키는 것이다.
한민족(동이족)은 신지선생에 의해서 신지문자를 창조했으며, 세종대왕은 가림토문자 38자를 28자로 줄이였으며, 또다시 24자로 줄이어 훈민정음을 현재 우리는 사용하고 있으며, 신지문자가 시작되면서 한글식 뜻과 음이 있었다. 중국식 발음보다 한글식 말음으로 우리는 지켜야 한다.
(신지선생이 신지문자 한문을 만든것이며, 신지선생은 동이족(한민족)사람이다는 입증을 대만의 임어당 대 석학박사가 말해 준것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음력은 누가 만들었는가?
단기 4230년 동이족인 (한민족) 희자, 화자라는 우리의 선조가 만든것이다.
여기에 겻들이여 신을 믿은 세계최초의 민족은 기록에 의해서 동이족(한민족)이다.
쇳대, 핫대, 삿대의 단어가 6.000년 된 단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입증자료가 중국과 미국의 사학재단에 보관되어 있다한다.
(한글학자 한갑수 선생의 말씀 중에서 발췌했음)
중국이라는 연호를 쓰기 시작한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쯤되며, 그 이전에는 (지나)대륙이라 했다. 중원대륙(중국)의 송, 당 나라는 한족들의 나라이며,그 나머지 금, 원, 청, 요 나라는 동이족인 한민족이 다스리는 나라였다. 금나라는 신라의 경순왕의 뒤을 이은 나라를 몽고의 징기스칸이 멸망시켰다.
상고시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본명은 김추이고 김추의 아버지는 김방이 이다.
김씨 성을 가진 김추가 왜 박혁거세라는 신화의 이름으로 존제하게 되었는가?
그 때당시의 문화적 배경은 대자연속의 태초의 미지의 세계에서는 천자 하늘의 아들 신화적인 존재 즉 선통시대였다고 보여진다. (우상화로 신의 존재 )
삼국사기 제6 신라본기에는 소호금천씨가 김해김씨의 시조이며, 김수로왕의 시조이다.
옛 고려유생 송나라 유학생의 일화
송나라는 장원급제를 하면 황제는 청을 하나 들어주는 문화가 있었다.
고려유생은 송나라에서 공부한 후 장원급제하여 황제에게 청을 하나 요청을 하게된다.
황제에게 요청한 송나라의 역사책
1) 책부원구
2) 문원영화
3) 태평광기
4) 태평어람이며, (송나라 국보전 400기서 중의 일부임)
이때 동방서기가 반대를 하였다한다 그 이유로는 반도인(동이족)에게는 민족의식을 가지고 한민족의 혼을 깨우치는 책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이유이다. 현대에 사는 대한민국 국민과 학생, 지식인 국가공직사회 지도자들은 크게 반성하여야 될 대목중의 하나이다.
고려유생은 송나라에 보관된 역사기록 등을 적어 망태처럼 만들어 가지고 고려로 가지고 와서 책자로 만든 것이 책부원구이다.
신라의 김춘추는 라당과 연합하여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킨 역사의 반역자이다.
고려의 김부식은 삼국사기라는 역사책을 쓸때 고의적으로 동이족 (한민족)의 역사 오류와 단군신화 전의 역사를 빼버린 삼국사기는 역사적인 재 심판이 있어야 한다.
삼국사기의 기록은 중국의 춘추사관에 입각하여 섰다는 것은 중국의 입김이 있어다고 보여진다. 또한 삼국유사의 일원선생이 쓴 책에도 고조선의 단군조선을 신화로만 표현되었을뿐이다.
실존했던 단군조선은 중국대륙을 지배했다. 초기단군 역사(치우 헌원황제)의 맥을 끊은 상태로 단군신화와 평양, 고구려,백제, 신라의 한반도에 국한한 좁은 삼환관경의 단군조선을 신화로 표현한것은 역사적인 유감이다.
고려말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한 후 역성혁명을 일으켜 조선을 건국한것은 역사의 반역죄인이다.
맺는 말
중국의 동북공정은 한민족의 역사편입이다. 결과 중국의 동북공정은 한민족(동이족)의 역사이므로 중국은 동이족의 나라의 역사로 보아야 한다.
동이족(한민족) 혈통과 역사 찾기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워 져야 한다고 본다.
우리민족의 흥망성쇠속에서 라당의 신라 시대부터 역사의 단절이 시작되었다고본다.
또한 고려, 조선시대의 역사편찬에 실존한 단군조선을 신화로 역사를 편찬한것은 잘 못이며, 왜구인 일본국의 침탈과 36년이라는 식민사관에 의해서 한민족의 역사 말살 정책에 의해서도 우리의 역사기록이 신라에 이어 소실 된것이다.
세계 여러나라들이 보관하고 있는 역사기록문건을 조사하여 한민족의 역사 찾기에 노력을 하여야 하며,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무분별한 외래어 및 전통문화 잠식을 막아야 겠다고 생각한다.
고구려, 백제의 멸망과 당나라와 신라, 일본의 침탈은 동이족의 문화, 정신, 사상, 역사를 말살하였다. 신라, 고려, 조선, 대한민국의 그때 그 시절을 경영했던 유정자들의 사대주의를 척결하여 역사바로 세우기, 역사바로 알리기 운동을 새롭게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되겠다고 생각한다.
헌정사의 55년 동안 우리가 뽑아준 유정자들이 한민족의 역사의식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국가와 국민을 상대로 범죄행위를 일삼지는 못했을 것이다.
일연의 삼국유사가 고려와 조선시대를 지나 일제강점기인 1928년에야 한국어판으로 간행되어 야담이라는 잡지에 1930년대에 단군신화가 알려진 것인데 그 때 당시에는 큰 사건이기는 하지만 단군조선 초기와 단군조선 전의 동이족(한민족)의 역사를 2007년 4월 현시점에서 보면 단군조선 헌원황제, 치우황제, 천국원국, 이진국 등 현재의 중국 전체가 한민족의 터전이다. 한민족의 역사가 끊긴 상태와 이미 한민족은 도교 신선, 신을 믿은 인류 최초의 배달의 민족이라는 새로운 역사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이족(한민족)이 한족인 중국과 일본국에게 실패본 원인을 분석한 결과 그 때 그 시절을 경영했던 유정자들의 사대주의와 부정부패, 역사 의식결여, 분열정치, 권력남용 등 민족에 반하는 나쁜 행동과 두뇌를 사용하여 한민족은 실패를 본것이다. 실패본 한민족의 웅비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국가와 민족에 반하는 부정부패를 일삼고 있는 유정자들부터 이땅에서 몰아 내야 되는 사명감이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정동영, 김근태, 정운찬, 등 차기 예비 대권주자와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민주당, 국민중심당 민주노동당 정치권 및 일반 개인과 유감은 없으나 국가와 국민, 한민족과 남북통일, 선진 조국건설에 지장을 주는 반하는 지도자이며, 역사 바로 세우기와 도덕 국가건설에 걸림돌은 제거해야 되기 때문에 역사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책임져한다는 주장이다.
대통령 예비후보 백승원 드림 2007. 7. 4.
중국의 동북공정은 동이족(한민족)을 밝히고 있는것이다
▲ 한민족(동이족)의 땅임, 단군조선의 삼환관경임, 단군조선 전의 역사부터 알아야 한다.
중국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은 약100년 전부터 사용한 것이다.
중국의 부여는 백제의 부여
중국의 경주는 신라의 경주
중국의 가야는 김해의 가야
중국대륙은 한민족(동이족)의 땅이라는 역사사실을 중국스스로 밝혀주고 있는 것이며, 중국의 동북공정정책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는 한반도 전체를 포합된 것이여야 맞는 것이다.
중국의 탁록 삼조당에 있는 삼황제 동상(왼쪽부터 치우, 황제, 염제). 중국은 역사를 끌어올리면서 동이족의 치우는 제외하고 황제와 염제에 대한 부분만 사실화 시킨것이다. (사진 권태균)
중국의 삼황제 동상 중 치우는 동이족(한민족)우리의 조상이 확실하며, 황제라는 이름도 동이족의 헌원황제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여지며, 단군조선 전기의 한민족(동이족)의 역사를 중국역사에 표기하고 있으므로 상고시대의 한족과 동이족(한민족)의 역사에 대하여 세계 다른 나라의 문헌과 사학재단에 대하여 모두 조사를 해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민족(동이족)의 혈통과 최초의 국가
먼저 한민족(동이족)의 조상이 누구인지부터 알아야한다.
우리의 조상이 누구냐고 물으면 단군의 자손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조상은 (반고,환인 천황이다)천제원국의 나라이다.
한민족의 최초의 국가는 천제원국(반고, 환인 천황이라고 불렀던 발음)
1) 한민족(동이족)의 발음으로는 천제원국 또는 우전국, 이진국이라고 불렀다.
2) 중국(한족)의 발음으로는 천제국을 이딘국이라고 불렀다.
3) 유럽(이스라엘)의 발음으로는 천제국을 에덴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기록에 의한 인류의 최초의 조상은
1) 아반과 나반이다.
동이족, 묘족, 장족은 모계사회 (어머니)이로부터 시작되는 사회였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한민족의 역사기록은 단군신화 이전의 역사를 단절시킨 것은 한민족의 혼맥을 끊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내용에는 우리의 조상이 반고, 황인 천황이라는 기록을 빠트린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한민족(동이족)의 국가 천제원국은 5환국이였으나 점차 세력이 확장하여 12연방체로 발전하였다.
천제인의 12연방체
1) 반고환인=7대 3-5000년
2) 환을천황 19대까지=거불단 환궁
3) 단군~47대까지 우단국
4) 담군 색부루
진나라가 한족을 천하통일한 진씨 황제는 우리의 한민족(동이족)이다.
MBC 문화방송국에서 방영하고 있는 고주몽과 부여, 한나라의 군황 우방이도 한민족(동이족)이다. 진씨 황제의 천하통일과 진나라의 멸망 과정에서 국가의 혼란이 극에 달하였으며, 한민족(집권세력)의 일부가 중국의 절강성, 운남성, 가야, 부여지방에 거주하던 동이족이 한반도로 이주해오면서 조상, 묘, 지명을 함게 통일신라시대까지 가지고 왔기 때문에 한반도의 지명과 중국의 지명이 중복되는 이름이 많다는 것을 알수 있다.
현재 중국지명에는 가야, 경주, 부여 등의 이름이 있듯이 한반도에도 김해의 가야, 백제의 부여지명의 나라가 과거와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는 신라의 경주라는 이름도 중국에 있는 지명이다.
세계유일의 한민족(동이족)만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간난아이의 엉덩이에 푸른 반점이 있다.
동이족의 혈통확인은 반점에서 확인이 되며, 염색체가 거의 같다는 것이 확인된다.
그러나 한족인 중국은 푸른반점이 없기 때문에 한족과 동이족의 혈통을 쉽게 가려 낼 수 있다.
상고시대에는 자신의 성씨가 죽을 때 까지 없었으며 (약 6.000~1만년) 도통한 사람에게만 선도에서 (봉선방)씨자를 붙여주었다.
동이족(한민족)의 중심지는 천산산맥 (삼위태백산)과 (한반도의 태백산)의 지명이 비슷하다.
이시대가 지금으로부터 약1만년전 전으로보고있다. 한반도의 태백산맥의 산 이름과 동일하는 것은 중국에서 살던 동이족이 한반도로 이주해 왔다는 것이 입증되는 대목이다.
(삼국유사의 새로운 고찰)
단군신화는 사실기록에 의해서 발취해야한다.
응녀, 호랑이, 쑥에 대한 해석
응녀는 응씨이고 호랑이는 호씨 성의 이름으로 해석을 해야한다.
그 이유로서 그 때 당시에는 짐승의 동물 형상을 빌려 이름과 나라 ,부락, 지명의 이름을 지었다.
관직의 이름을 산 이름을 붙여 사용했으며, 관직명으로 삼았다.
즉 동학, 서학, 남학, 북학, 중학 등의 이름이 서전에서 표현되었다.
한족의 한나라의 군황은 유방인데 유방의 시조는 동이족의 단군신화의 헌원황제이다.
한나라, 부여, 고주몽의 고구려 때의 한나라를 일컨는 말이다.
헌원황제의 자녀는 25명중 14명이 신적으로 도통하여 성씨를 하사 받았다. 한다.
제곡 고신씨의 계열 해모스, 고주몽, 유리왕의 고구려건국으로 이어진것이다.
(황단고가책, 규원사화에서 발췌)
한문을 만든사람이 (동이족)의 신지라는 한민족계의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는 중국글로 잘 못알고 있다. 문자를보면= 갑골문자(거북등) 결승문자(쌈줄) 녹조문자, 신지문자가 지금의 한문이다.
신지선생은 음과 뜻의 표기를 우리가 사용하는 음과 뜻이 같게 발음하는 한문 글이다.
즉 우리말의 뜻과 발음으로 북경하면된다 신지선생이 한문을 만들 때의 음과 뜻글자이다.
신지선생이 만든 신지문자의 한문의 음과 뜻글의 발음을 우리식으로 2004년까지 사용한것을 북경을 베이징으로 중국식발음으로 표현하는 것은 큰 잘 못이며, 우리문화주권을 포기한 것이다.
일본, 중국, 미국등의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문화주권을 지키는 것도 역사를 지키는 것이다.
한민족(동이족)은 신지선생에 의해서 신지문자를 창조했으며, 세종대왕은 가림토문자 38자를 28자로 줄이였으며, 또다시 24자로 줄이어 훈민정음을 현재 우리는 사용하고 있으며, 신지문자가 시작되면서 한글식 뜻과 음이 있었다. 중국식 발음보다 한글식 말음으로 우리는 지켜야 한다.
(신지선생이 신지문자 한문을 만든것이며, 신지선생은 동이족(한민족)사람이다는 입증을 대만의 임어당 대 석학박사가 말해 준것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음력은 누가 만들었는가?
단기 4230년 동이족인 (한민족) 희자, 화자라는 우리의 선조가 만든것이다.
여기에 겻들이여 신을 믿은 세계최초의 민족은 기록에 의해서 동이족(한민족)이다.
쇳대, 핫대, 삿대의 단어가 6.000년 된 단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입증자료가 중국과 미국의 사학재단에 보관되어 있다한다.
(한글학자 한갑수 선생의 말씀 중에서 발췌했음)
중국이라는 연호를 쓰기 시작한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쯤되며, 그 이전에는 (지나)대륙이라 했다. 중원대륙(중국)의 송, 당 나라는 한족들의 나라이며,그 나머지 금, 원, 청, 요 나라는 동이족인 한민족이 다스리는 나라였다. 금나라는 신라의 경순왕의 뒤을 이은 나라를 몽고의 징기스칸이 멸망시켰다.
상고시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본명은 김추이고 김추의 아버지는 김방이 이다.
김씨 성을 가진 김추가 왜 박혁거세라는 신화의 이름으로 존제하게 되었는가?
그 때당시의 문화적 배경은 대자연속의 태초의 미지의 세계에서는 천자 하늘의 아들 신화적인 존재 즉 선통시대였다고 보여진다. (우상화로 신의 존재 )
삼국사기 제6 신라본기에는 소호금천씨가 김해김씨의 시조이며, 김수로왕의 시조이다.
옛 고려유생 송나라 유학생의 일화
송나라는 장원급제를 하면 황제는 청을 하나 들어주는 문화가 있었다.
고려유생은 송나라에서 공부한 후 장원급제하여 황제에게 청을 하나 요청을 하게된다.
황제에게 요청한 송나라의 역사책
1) 책부원구
2) 문원영화
3) 태평광기
4) 태평어람이며, (송나라 국보전 400기서 중의 일부임)
이때 동방서기가 반대를 하였다한다 그 이유로는 반도인(동이족)에게는 민족의식을 가지고 한민족의 혼을 깨우치는 책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이유이다. 현대에 사는 대한민국 국민과 학생, 지식인 국가공직사회 지도자들은 크게 반성하여야 될 대목중의 하나이다.
고려유생은 송나라에 보관된 역사기록 등을 적어 망태처럼 만들어 가지고 고려로 가지고 와서 책자로 만든 것이 책부원구이다.
신라의 김춘추는 라당과 연합하여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킨 역사의 반역자이다.
고려의 김부식은 삼국사기라는 역사책을 쓸때 고의적으로 동이족 (한민족)의 역사 오류와 단군신화 전의 역사를 빼버린 삼국사기는 역사적인 재 심판이 있어야 한다.
삼국사기의 기록은 중국의 춘추사관에 입각하여 섰다는 것은 중국의 입김이 있어다고 보여진다. 또한 삼국유사의 일원선생이 쓴 책에도 고조선의 단군조선을 신화로만 표현되었을뿐이다.
실존했던 단군조선은 중국대륙을 지배했다. 초기단군 역사(치우 헌원황제)의 맥을 끊은 상태로 단군신화와 평양, 고구려,백제, 신라의 한반도에 국한한 좁은 삼환관경의 단군조선을 신화로 표현한것은 역사적인 유감이다.
고려말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한 후 역성혁명을 일으켜 조선을 건국한것은 역사의 반역죄인이다.
맺는 말
중국의 동북공정은 한민족의 역사편입이다. 결과 중국의 동북공정은 한민족(동이족)의 역사이므로 중국은 동이족의 나라의 역사로 보아야 한다.
동이족(한민족) 혈통과 역사 찾기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워 져야 한다고 본다.
우리민족의 흥망성쇠속에서 라당의 신라 시대부터 역사의 단절이 시작되었다고본다.
또한 고려, 조선시대의 역사편찬에 실존한 단군조선을 신화로 역사를 편찬한것은 잘 못이며, 왜구인 일본국의 침탈과 36년이라는 식민사관에 의해서 한민족의 역사 말살 정책에 의해서도 우리의 역사기록이 신라에 이어 소실 된것이다.
세계 여러나라들이 보관하고 있는 역사기록문건을 조사하여 한민족의 역사 찾기에 노력을 하여야 하며,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무분별한 외래어 및 전통문화 잠식을 막아야 겠다고 생각한다.
고구려, 백제의 멸망과 당나라와 신라, 일본의 침탈은 동이족의 문화, 정신, 사상, 역사를 말살하였다. 신라, 고려, 조선, 대한민국의 그때 그 시절을 경영했던 유정자들의 사대주의를 척결하여 역사바로 세우기, 역사바로 알리기 운동을 새롭게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되겠다고 생각한다.
헌정사의 55년 동안 우리가 뽑아준 유정자들이 한민족의 역사의식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국가와 국민을 상대로 범죄행위를 일삼지는 못했을 것이다.
일연의 삼국유사가 고려와 조선시대를 지나 일제강점기인 1928년에야 한국어판으로 간행되어 야담이라는 잡지에 1930년대에 단군신화가 알려진 것인데 그 때 당시에는 큰 사건이기는 하지만 단군조선 초기와 단군조선 전의 동이족(한민족)의 역사를 2007년 4월 현시점에서 보면 단군조선 헌원황제, 치우황제, 천국원국, 이진국 등 현재의 중국 전체가 한민족의 터전이다. 한민족의 역사가 끊긴 상태와 이미 한민족은 도교 신선, 신을 믿은 인류 최초의 배달의 민족이라는 새로운 역사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이족(한민족)이 한족인 중국과 일본국에게 실패본 원인을 분석한 결과 그 때 그 시절을 경영했던 유정자들의 사대주의와 부정부패, 역사 의식결여, 분열정치, 권력남용 등 민족에 반하는 나쁜 행동과 두뇌를 사용하여 한민족은 실패를 본것이다. 실패본 한민족의 웅비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국가와 민족에 반하는 부정부패를 일삼고 있는 유정자들부터 이땅에서 몰아 내야 되는 사명감이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정동영, 김근태, 정운찬, 등 차기 예비 대권주자와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민주당, 국민중심당 민주노동당 정치권 및 일반 개인과 유감은 없으나 국가와 국민, 한민족과 남북통일, 선진 조국건설에 지장을 주는 반하는 지도자이며, 역사 바로 세우기와 도덕 국가건설에 걸림돌은 제거해야 되기 때문에 역사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책임져한다는 주장이다.
대통령 예비후보 백승원 드림 2007. 7. 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